번역료 측정이 잘못됐다.

번역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전부터 생각해둔게 있어 글을 분리해서 적어 볼까 한다. 내가 번역을 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게 바로 “얼마나 받는가?”라는 질문이다.

출판사와 계약서를 쓸 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비밀로 한다. 외부에 공개하면 안된단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역자를 꼬시거나 역자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자연스래 어느정도 되는지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다고해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공사장에서 노가다를 할 때 이틀에 7만원을 받았었다. 주말 토,일을 공사장에가서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나르고 청소를 하면 점심때 밥을 준다. 밥은 공짜다. 먼지가 많아 힘들지만 나름 체력도 단련되고 돈의 소중함을 느낄수 있는 일자리다.

이렇게 적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가…

번역을 하면 장당 계약을 할 수도 있고 인세 계약을 할 수도 있는데 보통 장단 계약을 한다. 모바일 계열 책이 아니면 잘 팔리지 않는 요즘 한국 IT 출판 업계를 생각하면 그게 어쩜 번역자에게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장당 얼마인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평범한 개발자가 버는 돈을 시간단위로 환산한 금액에는 턱없이 모자를 것이다. 그렇다고 적은 돈도 아니고 어찌보면 딱 적당할 수도 있다. 대신 번역이 끝나고 책이 나오는 순간에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으며 끈기를 기를 수 있다. 또 해당 책을 진득하게 볼 수 있으니 아주 ‘잘’까지는 아니어도 ‘대충’이나마 해당 주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어쨋든 번역은 돈만 보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른 업계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IT 서적 번역 중에 내가 경험한 번역료 측정 방법은 세가지다.

  • 1. 건당
  • 2. 원문 장당
  • 3. 번역문 장당

1. 건당

이코인을 받을 때 대충 건당으로 받은 것 같다. 물론 페이지 수가 많으면 이코인을 많이 받고 페이지 수가 적으면 조금 받았지만 그 기준이 애매했다. 원문 PDF 파일 같은게 아니라 단순 웹 페이지라 ‘장’을 계산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어서 아마도 번역한 원고를 기준으로 세페이지 이내면 얼마 넘으면 얼마 또한 대여섯 페이지 넘으면 얼마.. 이런식으로 측정했던 것 같다. 어차피 받는돈이 이코인이었지마나 나름 쏠쏠했다. 몇건만 하면 책 몇권은 쉽게 살 수 있었다.(캬캬캬 도무지 얼만지 상상이 안되게 적었지만.. 괜찮단 얘기다.)

2. 원서 원고 장당

현재 출판사에서는 이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원서 페이지당 얼마를 준다. 그 페이지에 글자수가 얼마나 있든 상관없다. 난 이게 불만이다. 내가 번역했던 하이버네이트 책의 1장은 글자만 있다. 그림이나 코드가 한 줄도 없다. 엄청나게 힘들다. 코드가 많이 들어있는 장에 비하면 번역랴이 두배에 달할지도 모른다. 또 글자만 있는 장은 보통 난이도가 높다. 코드는 대충 눈대중으로 보면 어떤 내용일지 상상이 되니까 쉽다. 근데 말이 많으면 어렵다. 난 그때부터 이런 측정 방법이 바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3. 번역 원고 장당

대학교때 잠시 매우 페이가 좋은 번역을 할 수 있었다. 예산이 풍부한 곳에서 진행한 번역이었는데 번역료 계산 방법이 독특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이상적이었다. 내가 번역한 것을 원고지 형태로 변환해 원고지 장단 번역료를 지급해줬다. 워드에서 한페이지를 원고지 보기로 변환해보면 대충 A4 한장 꽉차게 번역한 내용이 원고지로 3~4장 정도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장단 번역료가 2번 방법의 번역료와 비슷하거나 많았다. 이정도면 번역만 해도 먹고 살만하겠구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 일이 없어졌다. ‘돈’이 되서 그런지.. 다른 업체에 일을 맡긴것인지 예산이 없어 자체 해결하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요청이 오면 다시 하고픈 알바다.

이 글을 읽다보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 돈 때문에 번역하는게 아니라면서 왜이렇게 번역료에 집착하냐고?

난 돈 때문에 번역하는게 아니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릇된 가치평가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번역료가 짜도 상관없다. 어차피 대동소이한 번역료이고 내가 번역하는 목적은 뿌듯함, 끈기, 성취함, 학습이 주요 목적이다. 그렇다고 원치않는 일(용어 고민, 감수, 일정압박, 번역이 개판이라고 욕먹기)이 따르는 번역을 하면서 페이를 안받을 순 없지 않은가. 페이는 적든 많든 받아야된다. 그런데 되도록이면 올바른 측정 방법이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측정 방법은 3번이다. 2번의 문제점은 너무 분명하다. 그림과 코드가 많은 책은 번역하기 쉽다. 말이 많은 책은 번역하기 어렵다. 그런데 장당 받는 돈은 똑같다.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공동번역으로 가면 문제는 더 복잡하다. 누군 그림과 코드가 많은 곳을 번역하고 누군 말이 많은 곳을 번역한다. 번역량을 조절하면 되지만 페이가 달라진다. 거의 절반의 돈을 받고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번역료는 번역한 원고를 기준으로 책정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역자가 번역하기 쉬운 책을 골라 번역하는 현상도 줄일 수 있고 말이 많은 책이어도 좋은 책이라면 번역할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밖에도 원고료 측정에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몇가지 더 있는것 같다. 번역자의 실력, 경험에 대한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누군 감수하는데 한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번역하고 누구는 대여섯시간의 감수가 필요한 수준으로 번역을 해도 같은 페이를 받는다면 어찌될까. 지금은 어떻게 되고 있는걸까? 다른 역자들이 얼마나 받는지 몰라서 난 모르겠다. 내가 허접하고 발전이 없으니 게속 같은 돈이겠거니 생각하는게 속 편할지도..?

역자가 얼마나 마감일을 잘 지키느냐 역시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고려하는지 어쩌는지 모르겠다. 역자의 편의를 많이 봐주고 있는 것 같긴한데… 뭐.. 기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흠.

역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역자에게 감수까지 맡길 계획이라면 페이를 더 줘야 하는것 아닐까? 근데, 과연 감수까지 할 수 있는 역자가 얼마나 될까. 그정도는 출판사에서 외주를 주던, 자체 감수자를 키워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어쨋든 생각해보면 올바른 가치평가를 위해 고민해야 할 것들이 제법인데 한국 IT 출판 업계와 역자들은 참 착하다. “원고 장당 얼마”라는 단순한 원칙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니…

맘에 안들지만 그렇다고 안할 순 없다. 소일거리로 번역만큼 재밌고 유익한 일을 아직 못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냥 이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할까 한다.  IT 출판 업계가 2번을 고집하는한 나는 앞으로 번역하기 쉬운책만 골라서 번역할 생각이다. 근데;; IT 서적은 대게 번역하기 쉬운책들이 많다. ㅋㅋㅋ 비겁하다고 비난해도 좋지만 책 한 권이라도 번역한 다음에 비난해 달라!!

ps: 참.. 혹시 번역하고 싶으신 분들은 각 IT 서적 출판사에 직접 연락하셔도 되는데,, 그게 좀 왠지 어렵다고 느껴지시는 분들은 저한테 간단하게 번역한 문서를 첨부해서 메일로 보내주시면 제가 아는 출판사(위키북스, 에이콘, 한빛) 쪽으로 소개시켜 드릴께요. 언제든지 도전하세요.ㅋㅋ 특히 대딩들.. 괜히 신입생때부터 면접준비 같은거 하지마시고.. 그 시간에 번역하면서 수양이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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